ㅁ Prologue

2009년 9월 25일. 금요일의 늦은 오후에 대한민국에는 그토록 기다리던 "아이폰 1호 개통자"가 나옵니다.
인터넷과 트위터에서는 그를 "용자"라 칭하며 영웅의 탄생을 기뻐합니다.

그로 넉달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아이폰의 이야기는 끊이질 않고 있습니다. 스마트폰에 대한 인식도 변했고 그 사이 구글 넥서스원의 용자도 탄생을 했지요.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에서야 꺼내는... 이제는 말할 수 있다!!
국내 아이폰 1호 - "용자"의 탄생, 뒷 이야기를 꺼내볼까 합니다.


ㅁ Chapter.01 - 기사 | 2009.09.25, 12:00

미디어 다음에 올라온 아시아경제의 "국내 '1호 아이폰 사용자' 탄생한다."라는 기사를 우연히 접합니다. 회사에서는 애플과의 협상이 한참 진행 중이었기에 관심을 갖고 읽었는데, 내용인즉슨 33세의 이성진씨가 직접 전파연구소에서 전파인증을 받고 금일 SKT에서 개통을 할 예정이라는 것이었습니다.

※ 위에 링크한 기사는 KT에서 아이폰 1호 고객이 나온 후 언론사 측에서 본문을 수정한 기사입니다. 결과적으로 오보가 됐기에 SKT에서 KT로 다음날 급히 수정했더군요. 아래는 수정되기 전의 기사 전문입니다.

수정되기 전 기사전문







ㅁ Chapter.02 - 33세 이성진씨 | 2009.09.25, 12:00~13:00

기사를 접한 후 제 머리속에는 계속해서 기사 속 몇개의 키워드 들이 맴돕니다.

"이성진씨", "33세", "오랜 애플 마니아", "철강업체"...

100%까지는 아니었지만, 최근 몇 년간 소식을 나누지 못했던 내 친구 "성진"이의 이미지와 너무나 일치했기 때문입니다. 우선 이름이 일치하고, 내 친구 성진이는 34세(2009년 당시)이지만 언론은 만 나이로 쳐서 33이라 했을테니 얼추 맞는 것 같고, 어려서부터 애플 제품에 관심이 많았고, 철강업체 다닌다는 이야기는 얼핏 주워들은 것 같은...  그리고 결정적으로 성진이라면 충분히 이런 일을 저지(?)르고도 남을 녀석이라는 생각이 머리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휴대폰에는 성진이의 연락처가 없었습니다. 2008년 KTF(現 KT)로 입사하면서 지급받은 휴대폰에 연락처를 옮기지 못했기도 했거니와 몇 년간 사실 연락이 뜸하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아! 싸이월드" 불현듯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내팽겨친) 싸이의 1촌 명단이 떠올랐고, 역시나 성진이는 그 안에 있더군요. 프로필 확인을 하자, 휴대폰 번호가 1촌공개!!! 바로 통화를 시도했습니다.

오랜만의 통화임에도 불구하고 성진이가 반갑게 전화를 받아주었고, 기사 속의 33세 이성진씨가 너 맞냐고 묻자 맞다고 합니다. 참 신기했습니다. 1호 고객 축하한다는 말과 더불어 그간 나누지 못한 근황을 주고 받은 후 전화를 끊습니다.



ㅁ Chapter.03 - 데드라인 | 2009.09.25, 13:00

전화를 끊은 후 "오늘 아이폰 1호 개통자가 나오는 모양인데 SKT에서 개통할 것 같고 그 주인공이 제 친구"라는 사실을 팀장님께 보고합니다. 팀장님과 우리 쪽으로 데리고 와야 한다는 공감대를 이룬 후 작전에 들어가기 시작합니다.

저는 친구와의 재통화에서 KT가 애플과 협상 중 임에도 왜 SKT에서 개통을 하려고 하는지 상황파악에 들어갔고, 몇주전 KT에 개통의사를 타진했으나 시스템 미비로 개통해줄 수 없다고 답변을 받아서 SKT에 알아봤는데 그 곳에서는 가능하다고 하기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제안을 합니다. "혹시라도 내가 다시 알아봐서 시스템에서 처리 가능하면 KT에서 가입해 줄래?"

30분의 시간을 주겠다고 합니다.



ㅁ Chapter.04 - 비상 | 2009.09.25 13:00~13:30

비록 짧은 시간이 주어졌지만 실낱 같은 가능성이 생겼습니다.
 
이 때부터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며 비상이 걸립니다. RM(Risk Management, 위기 관리)을 담당하는 부서에 내용이 전파되고,  다시 관련 부서들에게 내용이 전파됩니다. 회사에서 공을 들여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임에도 불구하고 첫 고객을 SKT에게 빼앗길 위기라는 인식이 전해졌기 때문일까요...

"어떻게 해서든 방법을 찾아 가입 할 수 있도록 준비하겠다." 라는 답변이 30분이 안되서 저에게 돌아왔고, 팀장님은 새로운 임무를 제게 부여합니다.

"무조건 잡아라"



ㅁ Chapter.05 - 007 비밀작전 | 2009.09.25 14:00~16:00

저는 다시 통화로 "우리쪽 시스템에서 처리가 가능하다. KT로 다시 와줄 수 있겠느냐" 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친구는 당시 용산에 위치한 전파연구소에서 인증서가 나오기 만을 기다리는 상황이었는데 오겠다는 확답을 해주지 않은 채,

"민철아, 나 잠깐 이야기 좀 해야하거든. 한 30분 있다가 내가 전화할께." 하고 끊는게 아니겠습니까.

머리 속에서는 별의 별 생각이 들더군요. "그 사이 SKT 관계자가 전화했나?", "인증서가 곧 나와서 바로 SKT로 갈 생각인가?" 그 즉시 (팀원의 응원을 받으며) 사무실에서 나와 택시를 잡아 타고 용산으로 향했습니다. 가는 내내 불안하고 심장은 쿵쾅쿵쾅. 그와중에도 관련 부서 담당자들과의 통화는 계속됐습니다. 

대리점이나 전화국에 아직 아이폰 가입 시스템이 반영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잠실 KT사옥으로 데려오는게 최선이라는 말과  만약 데리고오지 못 할 경우를 대비해 원격으로 개통하는 방법을 알려줄테니 숙지하라는 것, 그리고 반드시 챙겨와야 하는 정보와 서류 등 정말 많은 말들이 오갔습니다.

출발하고 약 20~30분 후에 전파연구소에 도착을 하여 통화를 했습니다. 용산이라는 말에 친구가 놀라면서도 웃더군요. KT가 급하긴 급했는가 보다는 말과 함께... 오래간만에 만난 친구가 그렇게 반가울 수 없더군요. 다행히도 경쟁사의 담당자가 나와있거나, 통화를 한 상황은 아니었고 KT에서의 개통 굳히기 모드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ㅁ Chapter.06 - 용자의 탄생 | 2009.09.25 16:00~17:50

인증서가 나오기까지 한시간 정도를 같이 기다렸을까요. 원격 개통보다는 안전하게 개통을 하자고 설득하여 잠실로 돌아오는데 떨리는 마음이 진정 되질 않더군요. 친구가 참 고마웠습니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SKT가 아닌 KT에서 아이폰 1호 개통자가 탄생을 하게 됐고, 제 친구는 잠실의 업무지원센터에서 아이폰 개통 인증샷을 트위터에 올립니다.


그리고 곧 많은 사람들이 제 친구를 보고 이렇게 말하더군요.
"용자의 탄생." 이라구요.

제 친구를 향한 끊임없는 트위터의 메시지, SMS와 축하 전화를 옆에서 지켜보며 참 뿌듯했습니다. 모든 과정이 끝나고 친구 녀석이 저에게 "수고했다는 말과 고맙다"는 말을 하더군요. "너가 있어서 쉽게... 그리고 1호 개통자가 될 수 있었다고..."

진심으로 고마운 건 저와, 우리 회사 일텐데 말이죠.



ㅁ Epilogue

친구와는 개통 이후 소주도 한잔했고, 요즘도 계속 연락을 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당시 소주 한잔을 마시며 친구가 해준 소리가 기억에 남네요.

"임마, 니가 너네 회사랑 사람들 여럿 살린거야. 너가 나 KT에서 개통 못시켰면 여럿 짤렸을 껄. 오랫동안 애플이랑 협상하다가 대한민국 1호 고객이 SKT로 갔으면 난리났겠지. 포상은 받았냐? 회장님이 뭐라 안하시던?"

대한민국 아이폰 1호 고객이라는 상징성을 가질 사람이 제 친구였기에 저에게 주어진 기회를 SKT에게 넘겨주기 싫었을 뿐이었지, 포상이나 칭찬이 목적이 아니었기에 그런 것들이 없어도 그냥 웃으며 넘어갔습니다. 이렇게 블로그에 자랑스럽게 이야기 할 만한 소재가 되었고, 또 무엇보다도 한동안 뜸했던 친구를 찾은게 더 큰 행복 이니까요 ^^

사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최근 트위터를 통해 구글 넥서스폰의 1호 고객을 유치한 조주환 대리 (트위터 @ollehkt 계정 운영자)와 관련자 들이 CEO 표창을 받았는데, 그 모습을 보며 한 반나절 정도 아쉬워(괴로워??) 하기는 했습니다. (나는...나는 왜..왜 안줘...하면서 ^^;; 아, 이놈의 속물근성... 그런데 사실 CEO 표창은 평생 한번 받기 어려운 상이잖아요...)

당시 내부적으로 애플과의 협상이 마무리 되지 않은 상황이었고, 아이폰 1호 고객 유치와 관련된 과정이 크게 이슈화 됐다가는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부서와 담당자들에게 누가 될까봐 조심스러웠던 면이 있었습니다. 같은 일을 하더라도 어느 정도의 운은 작용 하는 것 같습니다.

과정과 내용을 아는 지인들이 많은 위로도 해주고 안타까움을 함께 나누기도 했습니다. 또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성진이가 건낸 위로의 말이 큰 힘이 되네요.

"그래도 네가 없었으면 아이폰도 넥서스원도 없었다고 생각해. 너랑 나랑 술 먹으라는 이야긴가보다...하하하"

친구야... 설 지나고 한잔 빨자~



더하는 글
+ http://bit.ly/d3BbMu  이 링크는 아이폰 1호 개통 되던 날 kmug에 올라온 한 게시물인데 댓글들을 보며 집에서 웃던게 생각이 나서 남겨봅니다. 댓글 중 KT에서 딜이 들어가지 않았겠냐는 말이 있는데 특혜를 제공하거나 챙겨준건 따로 없습니다. 오히려 힘들게 KT로 돌아선 친구에게 해준게 없어서 미안했을 정도랍니다 ^^;

+ 본의 아니게 오보를 내신 아시아경제 기자분께 이제서야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

+ 특히 이 일로 도움주시고, 고생하셨던 많은 담당자 분들께 감사와 위로의 말씀을 함께 전합니다.

+ 사실 이날 조직의 발 빠른 조치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흔히 공룡이라 불리우는 대기업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었는데 평생 잊지 못 할 기억이 될 듯 합니다.

+ 제 친구 성진이가 강연하는 동영상을 Ens 님께서 댓글로 남겨주셨네요. 링크는 다음과 같습니다. http://bit.ly/3H3lMt 19분 즈음에는 제 이야기와 사진도 나오네요. ^^; 영상도 한번 보시면 참 대단한 친구라는 생각이 드실겁니다~


조금은 관련 될 것 같은 글들 몇 개

+ 2007/11/06 :: 7년만의 외출, 사직서를 쓰다
+ 2008/03/17 :: 7년간 다녔던 회사를 떠나며 찍은 사진 몇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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