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좀 빼주실래요?

Posted by rince Talk, Play, Love/Blah Blah : 2007. 2. 11. 07:10



금,토 이틀간의 워크샵 일정을 마치고 돌아와서는 피곤이 쌓인 몸을 침대에 맡기곤 쌔근쌔근 낮잠에 돌입했습니다. 얼마나 잠이 들었을까... 단잠을 깨우는 휴대폰 소리에 눈을 떴습니다. 모르는 번호더군요. 사실 모르는 번호는 받지 않는 편인데 잠결에 무심코 받고 말았습니다. 낯선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오네요. '에이... 또 광고전환가보네...' 그런데 예상밖으로

아줌마 : 차 좀 빼주시겠어요?
rince : 예? 왜요?
아줌마 : 저희가 옛날부터 주차하던 자린데 잠시 정비소 다녀왔더니 세워 놓으셨더라구요.

정신을 가다듬고 생각해봤습니다. 워크샵을 다녀와서 집 앞 골목길 자리에 주차를 해놨고, 그 자리는 저희 집 앞이기는 하지만 우리 구역이라고 주장해 온적도 없고 동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냥 빈 시간에 차를 세워둔 사람이 자리 임자인것이죠. 근데 난데없이 옛날부터 주차하던 자리라니 어이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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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가 대던 자리에요... 차 빼주세요...

rince : 저희 집 앞인데요...
아줌마 : 어, 저희 집 앞인데... 어디사세요?
rince : 102호요
아줌마 : 몇번지신데요?
rince : XX-XX번지요.
아줌마 : 그래요?  저희가 몇년동안 여기 살았는데 저희가 대던 자리에요.

제가 초등학교때부터 이 집에서 살아왔고, 그 당시부터 그 자리는 아무나 차를 댈 수 있는 자리였습니다. 아마 전화주신 아주머니가 차 세울곳은 없고, 전에는 못 보던 차니까 (원래 집 주차장에 차를 대는데, 이날은 워크샾의 피로도 있고, 또 새벽 작업이 예정되어 있어 차를 골목에 세워둔것입니다.) 자기집 앞이니까 빼라고 하려던거 같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제가 집 앞이라고 하니, 원래 자기 전용 구역인것처럼 이야기를 돌린거죠.


rince : 저희도 여기서 몇년째 살고 있는데, 거기 아무나 차 대는 곳이거든요.
아줌마 : 저는 여기서 10년도 더 살았는데, 원래 저희 자리고 잠깐 정비소 다녀오니까 차를 세워두신거니까...
rince : ....
아줌마 : 저희가 이 집 입주할때 주인집에 차 대기로 하고 들어왔거든요? 저희보다 늦게 오신거 같은데... 그리고 저희가 차 거기 대기로 하고, 골목길도 청소하기로 했거든요. 입주할때 그렇게 했는데...

이 건물... 저희 아버지 건물입니다. 부모님은 3층에 사시고, 전 결혼한 작년 5월부터 1층으로 전세 들어왔습니다. 저희 아버지께서 그 골목길 자리의 권리를 주장하신적도 없으시며, 누구한테 그 자리를 써도 좋다고 허락할 입장도 아닙니다. 그리고 골목길 청소도 저희 아버지가 하시죠. 그래서 그대로 이야기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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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집주인 아들인데요..

rince : 저, 집주인 아들이거든요. 그 자리 옛날부터 아무나 주차할 수 있었습니다.
아줌마 : 네? 아..102호.. 결혼하고 새로 들어온...아..거기구나... 거기 주인집은 주차장 따로 있잖아요. 거기로 좀 빼주세요.. 네? 주차장에 대시면 되잖아요...

이 아줌마 강적입니다. 자기네 자리라고 주장하던 아줌마... 집주인 아들이라니까... 여기가 자기들 자리는 아니지만 주인집은 주차장이 별도로 있으니 거기에 다시 대면 안되겠냐는 겁니다. 물론, 저희 주차장소가 있으니 아주머니 말씀대로 차를 빼주는게 맞죠... 하지만 그냥 "죄송합니다"  말 한마디하고 일방적으로 전화 끊어버렸습니다.  주인집 아들인지 몰랐을때는 원래 자기네 자리라던지, 골목길 청소해주는대신 자기네가 쓰기로 했다는 식의 어이없는 말을 하던게 괘씸했기 때문입니다.
 
전화를 끊고 잠시후 집의 벨이 울렸으나 역시 무시했습니다. 마침 집의 모든 불도 꺼져 있던 상황이라 그냥 집에 없는 척 했습니다. 그후로도 2~3번 더 벨을 누르다 사라지더군요... 같은 집에 살면서 "이래도 되나?" 라는 생각이 있었지만, 그 아줌마가 행태가 정말 싫었습니다.

한 5분? 10분 정도 지났을까요... 침대에서 일어나서 옷을 주섬주섬 챙겨입었습니다. 차 빼주러요... ㅠㅠ
(악한거냐 착한거냐...) 골목길에서 차를 빼고 주차장에 넣은 후 핸드폰에 남겨진 아줌마의 번호로 문자를 보냈습니다.

"차 빼서 주차장에 넣었습니다. 자리에 주차하시면 될것 같습니다. 다 같이 쓰는 골목길인데 전용 구역인거 처럼 말씀하셔서 그랬습니다. 담에 다른차 있을때라도 그렇게 안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전 운전할때 양보도 잘하구요, 길 건너려고 하는 사람 있으면 차보다 먼저 보내고, 골목길에서 다른 차와 마주치면 제가 후진해서 차 빼줍니다... 스스로 기본은 된 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오늘은 아줌마의 말씀에 발끈해서 악한 짓좀 했습니다. '파워게임', '지 밥 그릇 챙기기' 이런건 여의도에 있는 높으신 놈들이나 하는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왜 힘 없는 우리들끼리도 "여기 내 자리거든요" 하면서 싸워야 합니까... 하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