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이 짜다면 짜다

Posted by rince Talk, Play, Love/Blah Blah : 2013. 6. 1. 02:03



내가 이런 글을 올린다고 해서 바뀌는 것도 없고, 얻는 것도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아마 혹자는 정신적으로 덜 성숙한 놈의 치기 어린 행동으로 치부할 것이고, 또 혹자는 얻는 것 하나 없이 잃기만 할 미련한 짓을 하는 덜 떨어진 놈 정도로 평가할 것이다. 드물게는 왜 저런 선택을 했을까 안타까워하는 사람도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이 늦은 시간에 글을 쓰고 올리는 것은, 이렇게라도 해야 나를 믿고 따라와준 프로젝트 멤버들에게도 면이 서고, 스스로에게도 덜 미안해지고, 내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다. 회사에서 인정 받지 못하고, 비난을 받고, 변방의 아웃사이더로 남는다 하더라도, 최소한… 스트레스로 인해 암에 걸리는 것 보다야 낫지 않겠는가


6월 26일 작은 서비스 하나를 론칭한다. 서비스의 아이디어 발굴에서부터, 사업승인예산확보 단계를 거쳐, 상세 기획 및 개발에 이르기까지 이번 프로젝트의 처음부터 끝까지 관여하거나 주관했다. 98년 사회에 첫 발을 내딛은 이래 처음으로 실질적인 프로젝트 매니저의 역할을 맡았기에 프로젝트의 성패에 대한 책임감과 부담감을 갖고 있다. 


프로젝트에 대한 애정은 두 말 할 나위 없다. 내가 평소 불편하게 느끼던 것들을 거의 완벽하게 해결했을 뿐더러, 회사가 시킨 업무를 피동적으로 수행한 것이 아닌 내 스스로 만들어 보겠다고 시작했기에…  내가 애용하게 될 서비스를 직접 만든다는 것은 일의 고됨을 넘어서는 즐거움이다. 확신할 수는 없지만 나와 같이 일을 하고 있는 프로젝트 멤버들 모두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을 것이라 짐작한다. 다들 스스로 한 번 해 보고 싶다고 손을 들고 참여한 사람들이니까. 


이번 주 어느 정도 개발이 완료되어 직접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수 있게 됐다. 생각보다 괜찮다. 아니 기대했던 만큼 훌륭하다. 만족스럽다. 왜 진작에 이런 서비스가 없었을까 싶다. 이 사업에 대한 추진을 승인받은 후, 윗 선에 보고 했을 때 브라보를 외치고, 이런게 역발상이라며 극찬을 받았다는 그 서비스가 내 손바닥 위에 올려져 있었다. 뿌듯하다 자랑스럽다. 가족에게 그리고 주변의 몇몇 사람에게 미리 만져볼 기회를 주었다. 반응은 거의 대부분 긍정적이었다. 심지어 근래 너희 회사에서 만든 서비스 중 최고인 것 같다라는 말까지 들었다. 그러하다.


하지만 출산 예정일보다 한 달이나 빨리 태어난 미숙아다. 앞으로 한 달간은 인큐베이터 안에서 보호 받아야 할 아이다. 극진한 보호가 필요하며 치료를 받아야 할 아이다. 이것 저것 검사가 필요하다. 검사 결과에 따라 처방이 내려져야 하고 경과를 유심히 지켜봐야 한다. 즉 아직 보완해야 할 점이 많은 상태의 서비스란 이야기다. 


오늘… 그러니까 5월의 마지막 날. 조직 내부 시연 및 중간 보고를 했다. 한 달 먼저 태어난 미숙아. 그러니까 미숙한 서비스를 가지고 진행을 했다.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말도 해 봤다. 하지만 부족한대로 일단 보고를 하란다. 검사도 하고, 처방도 받고, 치료도 해야하는데… 그래야 더 건강해질 수 있는데…


보고를 받으시는 분의 스타일 상 각오는 하고 있었다. 자세히 적으면 그걸 누가 다 읽느냐며 핀잔, 요약하여 적으면 자세한 내용을 어떻게 파악할 수 있느냐고 핀잔. 정말 각오하고 있었다. 게다가 나는 굿 스피커(Good Speaker)가 아니다. 아니, 좋은 발표자는 커녕 그 분야에 있어서는 자질도 경험도 부족하고 연습 또한 되어 있지 않은 풋내기라 해야 옳겠다. (이 부분은 꼭 개선할 것이다.) 내가 부족한 건 사실이지만 발표를 시작하고부터 마칠 때 까지, 한 문장 이상을 끝내보기도 전에 줄곧 끊김을 당하고, 비판을 받아야 할 정도로 쓰레기 같은 발표자였는지는 의문이다. 남들 앞에서 면박을 당해서 자존심이 상한 것이 아니라, 내가 정말 그렇게 형편없는 놈인가에 대한 자아성찰을 하는 중 이다. 


시연 준비가 엉망이었다고? 제대로 준비 안했다고? 언제 준비할 시간이 제대로 주어졌던가?


미숙하게 태어난 아이 건강을 챙겨야 할 때 아니었나, 최소한 숨은 붙어 있는지 지켜봤어야 하는 때 아니었는가… 막 태어난 아이 데리고 여기저기 구경시키자고 한 건 여러분들이지 않나… 난 다른 사람들 구경 시키기 위한 치장보다는 연명 시키기 위해, 앞으로 더 건강하게 자라나게 하기 위해 더 많은 신경을 쓸 수 밖에 없지 않았나. 누군가는 그래야 하지 않나… 그래도 허락된 시간 내에서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결국 나는 그냥 준비가 덜 된 발표자로 남을 뿐이다.


하이에나 같은 이들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말자. 하이에나는 원래 그러라고 태어났고 그들의 본분에 충실한 것 뿐일테니까.


발표 내내 평정심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여유를 가져보려 노력했다. 하지만 결국 말 하나에 크게 흔들리고 말았고, 내 목소리가 떨리는 것을 느끼며 창피한 순간이 있었다. 부끄러웠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진심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었다. 약한 모습은 보이기 싫었는데… 


나를 뒤 흔들어 놓은 그 순간을 돌이켜보면, 

프로젝트에 있어서 주요 기능은 아니지만 고객 편의를 생각해서, 소수의 사람이 쓸 걸 잘 알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민하여 만든 기능에 대한 그 분의 평가 


"그걸 누가써. 그 기능 그냥 빼"


내가 애플을 좋아하는 이유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곳에서 발견되어지곤 하는 숨은 기능, 고객에 대한 배려, 섬세함, 장인정신 때문이다. 본인 스스로도 주구장창 말하지 않았나? 제발 여러분들 디테일에 신경쓰라고… 그래 말로는 누구나 할 수 있다. 다만 스스로 옮기지 못할 뿐이지. 우리 프로젝트 멤버들이 수 개월간 모여서 의논하고,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모든 경우의 수를 모두 고려해서 고뇌 끝에 만들어낸 많은 기능들이 단 몇 분, 아니 단 몇 초의 생각으로 뱉어낸 말들에 의해 짓밟히고 으깨지는 살육의 현장을 보며 참담했다. 


지켜내지 못해서 멤버들에게 미안하다. 창피하다. 너희들의 노력을 수포로 만들어서 미안하다.


나는 이 서비스에 대한 청사진이 있다. 큰 그림이 있다. 지금은 정말 시작에 불과하다. 시작은 미약할지라도 하나의 새로운 산업으로 발전할 것이라 기대한다. 그리고 글로벌 시장에도 진출할 것이다. 서비스가 오픈되고 나면 이 서비스 내가 만들었다 자랑할 것이다. 누가 뭐래도 내 서비스다. 우리 멤버들이 같이 만든 서비스다. 기대와 달리 시장의 반응이 시큰둥해도, 고객들의 반응이 냉담해도 실망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내가 쓰고 싶은 서비스를 내가 만들었으니까… 그걸로 만족한다.


하지만… 

그래도...


손님이 짜다면 짜다...

임원이 짜다면 짜다…


그게 진리인 거다